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은 이유
언제부턴가 - 라기엔, 중학생부터 그랬다. 글이 좋았다. 난 글이 좋다. — 아, 첫 개시는 초등학교 - 일기를 쓸 게 없으면 자작시를 적어 내라고 했었고, 그걸 화시?라고 하나 그림을 그려서 전시했는데 그게 시발점이다.
중학교땐 국어선생님이 숙제로 가벼운 에세이를 적어보라고 했다. 내가 좋아하는 것들. 아이들 모두 일상의 소소함을 적었다.
내 것이 읽혀지고 발표되면서 반 여학생들의 귓가에 머무는 느낌. 회사 다니는 엄마가 화요일은 근무를 안하는데, 귀갓길 현관에 엄마 신발이 놓여있을 때. 그것을 적었는데 내 스스로 잘썼다는 만족감이 있었다.
나는 “글을 쓰는 사람이에요”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. 그런데 안쓴다. 이게 10년은 넘었다. 왜냐하면, 뭘 써야할지를 모르겠고 — 근데 쓰고는 싶고. 방송작가를 했고, 그건 창작의 노동은 아니었으니까 논외.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 쓰는 비즈니스 이메일은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하긴 하지만 - 또다른 영역을 넓히고 싶은 그런 순수무구한 마음인 거다.
유명한 글로벌 잡지사 인턴직 인터뷰도 봤었다. 그것도 맨하탄에서. 꿈같지만 — 탈락했고, 글쓰는 게 다가 아니고 사람이랑 일하는 직업이라고 그런 식의 피드백이 있었다. 그렇지 뭐. 근데 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을까. 누구를 위해서, 무엇에 대해서 쓰는지가 중요하니까. 예수님에 집중시키기 위해서. 단순히. 맞아.
고등학생 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친구와 공책에 자작시를 쓰며 서로 주고 받아 답시를 썼다. 너무 재밌었긴 했고. 그걸로 문예창작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다들 극 I인 그것도 모범생들인 애들이었어서 활발한 토론과 공감대 형성은 어려웠다. 학교에서 펴내는 책자에 기고도 했고, 자작시+그림 전시도 했다. 아. 우리 동아리 축제 때 시+그림 전시랑 카페도 했구나 — 그 카페가 예상 외로 인기가 있었는데, 시 보다는 음료가 사람을 끌었던 건가?
영어로 글을 쓰긴 한다. 지금 크리스천 월간지(십대들을 위한)에 실린다. 감사한 일이다— 근데 편집자의 공이 들어가야 완성되니까.
난 왜 글이 쓰고 싶을까, 너와 소통하기 위해서? 훗날 내 아이들이 읽고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서?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?
“정리되지 않은 글을 책으로 냈다”의 리뷰를 받은(그것도 남편이 남긴 말) 자비로 출간한 책도 썼다. 썼다기에는 그동안 썼던 걸 짜집기+알파한 정도.
아, 한국에서 1학기 대학교 다닐 때 과제로 쓴 영미문학의 이해 — 햄릿에 관해서 -의 글은 다시 봐도 잘썼다. 재밌다. 근데 더 깊게 들어가고 싶진 않다?
이렇게 흩어진 생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쓴 오늘을 칭찬한다. 이제 시작인 거야! - Sue. Sun, Jun 21, 2026